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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7 사회계급과 계층(2)
    etc./사회학개론 2009. 6. 16. 11:22

     
       
     
    한국사회의 계급구조와 사회이동
    한국의 근, 현대사를 통해 우리의 계급구성이 어떻게 이루어졌으며 사회적 이동은 어떠한지, 서구의 이념형적 계급구성이나 그 이동과 우리는 어떻게 다를 수 있는지를 검토해 보도록 하겠다.

    산업화에 의한 계급 분화의 시작은 일제 강점기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이전의 전통적 농업체계는 지주로서 양반계급과 소작인으로서 상민인 농민계급으로 크게 대별되었고, 신분적으로 상인이나 공인, 혹은 광대 등은 천민으로 그 수도 많지는 않았다. 1960년대 군사정권에 계획경제가 처음 도입되어 본격적인 산업화가 추진되기 이전까지는 대부분의 인구인 80%가 농업에 종사한 것을 보아도 계급분화는 크게 이루어지지 않은 셈이다. 이러한 특성을 배경으로 우리의 계급구조와 그 이동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자본가계급


    생산수단인 자본을 소유하고 타인의 노동력을 통제하거나 구매하는 계급.
    자본의 성격에 따라 산업자본가, 상업자본가, 금융자본가, 토지자본가, 기능자본가로 구분된다는 이념형을 염두에 두고 우리 자본가들의 형성을 생각해보자.
    일제는 식민 지배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기존의 지주소작관계를 그대로 잔존시키므로 토지 자본이 산업자본으로 이전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그러기에는 식민정책의 여러 가지 제약과 굴절 속에서 민족자본인 토지자본이 거의 소멸되었다. 그러나 국내 유일하게 토지자본을 산업자본으로 이전하여 지속적으로 성장한 자본가가 경성방직이란 우리나라 최초의 공장을 세워 운영했던 고창의 대 지주였던 김씨일가로 오늘날 삼양그룹으로 성장하였고 삼양그룹이 토착자본인 셈이다.

    이조 후기에 오면 보부상을 중심으로 상인들의 부가 축적되면서 상업자본으로 이전할 수 있는 기반이 된 경우도 있었다. 육의전 가에서 포목상으로 성공하고 이를 기반으로 토착 화장품인 “박가분”을 제조하여 자본을 끌어 모을 수 있었고, 독립 후 적산불하 과정에서 맥주회사를 인수해 자본가로 지속적인 성공을 할 수 있었던 토착 상업자본가가 두산그룹이다.

    해방 후 일제의 적산불하 과정에서 직물공장을 인수해 박정희 군사정권에 들어 본격적인 자본을 축적할 수 있었던 자본가가 선경의 창업주였다. 앞서 두산그룹의 본격적인 자본축적이 가능했던 것은 적산불하를 통해 산업자본으로 이동한 것이 중요했다. 이승만 정권의 미국원조경제 체제에서 정권의 지원으로 자본축적이 가능했던 자본가가 삼성, 금성(오늘날 LG 혹은 GS) 그룹들이다.

    군사정권의 계획경제에서 국가 기간산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자본을 축적해 오늘날 대 재벌로 부상할 수 있었던 자본가가 현대그룹의 창시자였으며, 미군 군납과 유통업, 특히 국내 유일한 항공사로 자본을 축적할 수 있었던 한진 그룹도 정권의 대폭적인 지원이 없이는 불가능했고 특히 기능자본가(자신의 자본은 없으나 자본을 축적하는데 기능적으로 지원하여 그 이윤의 일부를 지원받는 경우)에 의해 대 자본가로 급부상했던 김우중씨의 경우는 박정권에 의해 탄생한 자본가이다. 반면 정권에 의해 하루아침에 자본이 해체되는 경우가 중동 건설 붐으로 신흥 자본가로 급부상하던 율산그룹의 신선호씨의 경우는 극단적인 예이다. 그 만큼 자본 축적과정에서 정권의 헤게모니를 잡고 있었던 기능자본가들이 현대사에 자본축적과정에 얼마나 깊숙이 개입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예들이다. “천민자본주의”라는 부정적 평가가 이런데에서 연유된다.

    박정권에 이어 전두환, 노태우 군사정권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국제그룹의 해체, 한보그룹의 부상 등 정경유착의 부정적 현상들이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이전 정권의 비리들이 밝혀지면서 국빈들 사이에서는 정당하게 돈을 벌어 소시민적으로 사는 서민들의 소박한 삶이 더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신중간계급 (화이트칼라계급)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않고 정신노동이지만 자신의 노동력을 임금을 받고 판매한다는 특성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이다. 그러나 교육수준 높고 고용이 안정되어 있어 사회적 자원의 배분 과정에 유리하며, 계층적으로 육체노동자보다 상대적 상위에 위치하므로 작업복인 와이셔츠 색으로 일컬어진다.
    이들이 대자적 계급의식으로 프롤레타리아로 자기 정체성을 갖는지 여부는 사회를 진보적으로 가게 하는지 혹은 기존의 보수성을 유지하는지의 캐스팅 보우트를 쥔 중요한 집단이기도 하다. 1980년 광주민주화항쟁이 지역적 저항으로 그쳤던 것과 1987년 군사정권을 계속 승계하려는 정권의 음모를 “대통령 직선제”로 확실하게 민주화를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은 “넥타이 부대”로 일컬어졌던 화이트칼라들이 진보적 행동을 취했기 때문이다.

     
       

     
    구중간계급 (쁘띠부르조아)
         
    소자본이지만 생산수단인 자본을 소유하고 노동력을 판매하지 않고 자신의 노동력을 활용하여 소득을 얻는 계급으로 마르크스는 봉건체제 지배계급인 귀족이나 사제에 대한 제3신분으로 신흥의 도시상공업, 자유직업자 등 과도기계급으로 보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산업화 과정에서 보면, 계층적으로 상층, 중층, 하층쁘띠로 구분되는데, 특히 도시 빈민지역에 밀집해서 거주하는 산업예비군으로서 하층쁘띠도 그 수가 적지 않았다. 예컨대, 노점상이나 무허가 이발사, 미용사, 무허가 치료사 등도 그 예에 속한다. 물론 작은 점포의 장사, 동네 세탁소, 구멍가게 주인, 개인택시 기사 등이 중층쁘띠의 예이며, 개업의사, 약사, 변호사, 중소자본 공장주인 등이 상층쁘띠의 예이다. 계급적 성격이 동일하더라도 소득 차이로 사회적 자원을 소유할 수 있거나 향유하는 정도가 차이가 나므로 계층적 지위는 다를 수 있는 구체적 예들이라고 보겠다.



     
    노동자계급


    육체노동이지만 노동력을 판매하고 생산수단인 자본이 없는 무산계급을 의미한다. 이념형에 비추어 보더라도 노동력 수준의 숙련도에 따라 소득의 격차가 생길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농민의 자녀들 중에 학력이 낮거나 기술계 학교를 졸업한 경우 1960년대 들어서면 그 수가 급증하게 되며, 한국경제의 대외의존에서 오는 종속적 산업화는 노동계급의 제한적 확대, 고용 불안, 근로조건 열악, 저임금 조건, 3차산업 서비스업에 취업 인구 증가, 하층쁘띠나 주변계급화로 하강 이동하는 경우도 많아지게 된다. 물론 숙련노동자들의 경우 대기업의 블루칼라로 고용이 대체적으로 안정됨으로 정년을 그 회사에서 맞는 경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학졸업자들인 화이트칼라들에 비해 임금이 낮을 뿐 아니라 그들의 관리나 통제 하에 있는 상황에 불만이 고조되어 1980년대 말 이후 민주화에 의해 조직적인 노동운동에 열기를 더하게 되는 배경이 되기도 한다.

     
       

     
    주변계급(marginal class)


    제3세계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임시직 노동자, 비공식부문 참여 노동인력을 일컫는 계급적 용어이다. 우리나라의 대외의존적인 종속적 산업화 과정 중에 도시빈민지역에 집단적으로 거주하고 있는 경우로 노점상, 행상, 하청 노동자, 파출부 등 하층쁘띠와 중첩되기도 한다. 오늘날 철거민들로 자신들의 거주 공간 내지는 거리의 장사터 등 삶의 터전을 강제적으로 이전해야 되는 아픔을 겪으며 집단적 저항을 하기도 하나 그들의 노동력 자체의 비숙련도 때문에 여전히 계층적으로 하위수준에 머물게 된다.

     
       

     
    농민


    자영농인 경우에 생산수단인 토지를 소유하고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하지 않은 채 자신의 노동력을 활용한다는 측면에서 쁘띠 부르조아적 속성을 지니며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진전되면 농업 자본가나 농민 프롤레타리아로 전락할 과도기적 계급으로 보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앞서 자본가를 설명할 때 언급했듯이 역사적 특수성에 비추어 단순히 농민을 과도기적 계급으로 환원시킬 수 없다. 1948년에 단행된 “경자 유전의 법칙” 에 의해 지주들에게 토지를 매입하여 실제 경작하는 농민들에게 판매하며, 미작지 경우에 3ha 이상은 소유할 수 없게 하는 토지개혁에 의해 대부분이 자영농의 성격을 띠는 것이 우리나라의 농민이다. 그러나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상품적 가치를 공산품 값이나 다른 사회적 자원의 값어치에 수취 당함으로 농민들의 계층적 지위는 자신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층적으로 하강 이동하였다고 본다. 즉 “소재보존”은 가능했으나 “가치보존”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라고 보겠다.

     
       
     


    한국사회의 계급구조와 사회이동은 일제 강점기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1960년대 군사정권에 계획경제가 처음 도입되어 본격적인 산업화가 추진되기 이전까지는 계급분화는 크게 이루어지지 않은 셈이다. 이러한 특성을 배경으로 우리의 계급구조와 그 이동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자본가계급

    신중간계급 (화이트칼라계급)

    구중간계급 (쁘띠브르조아)

    노동자계급

    주변계급(marginal class)

    농민

     
       
       
     
     
     
    생산수단인 자본을 소유하고 타인의 노동력을 통제하거나 구매하는 계급은 □□□□□이라고 한다.
      
     
     
     
    □□□□은 제3세계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임시직 노동자, 비공식부문 참여 노동인력을 일컫는 계급적 용어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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